회개( 2020년 11월 10일 )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야훼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이사야 6:5)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만나고 나면 자신의 모습이 완연하게 드러나고 맙니다.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과 죄인이라는 사실이 주님과의 만남이라는 거울 속에 투영되는 것입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을 만난 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탄식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죄를 깨닫지 못했는데 하나님 앞에 서자 조국에 대한 걱정은 아랑곳없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사야가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숯불을 가져다가 그의 입술에 대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사 6:7).

이와 같이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면 무슨 죄를 지었든지 회개의 기도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하지 못한 신앙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믿는 것은 종교적이며 철학적이고 윤리적으로 예수님을 아는 것이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뒤에도 여전히 죄를 범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깊이 회개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짓는 죄를 늘 회개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몇 번이나 용서해 주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했을 때 이를 아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고 난 뒤 죄책감을 못 이겨 목매어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회개와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인격을 재창조하며 그 은혜가 우리의 삶에 임하는 통로입니다. 회개와 용서가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인격을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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