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율법( 2021년 01월 18일 )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한복음 8:7)
어느 이른 아침에 주님께서 성전으로 나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는데 모두 말씀의 삼매경에 빠진 듯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전 입구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서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더니 몇몇 사람들이 한 여인을 끌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돌멩이가 들려 있었고, 그 여인은 산발머리에 옷이 군데군데 찢겨졌으며 얼굴은 창백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여인을 예수님에게 끌고 와서는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인생만사를 율법의 척도로 이해하려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가냘픈 여인은 보이지 않고 율법만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율법’만 앞세웠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삶의 모든 것을 율법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항상 남의 잘못만 지적하고 남의 잘못된 행위를 정죄합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은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라고 되어있는 모세의 율법대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죽일 궁리만 했던 것입니다.
율법적인 기준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남의 약점을 바라보고 남의 죄를 끄집어내어 정죄합니다. 왜 가정에 불화가 일어나고 불행해지는지 아십니까? 남편이, 아내가, 자녀가 서로를 율법의 척도로 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부인을 율법의 척도로 보면 잔소리 많은 남편이 되고 맙니다.
집에 돌아올 때 돌을 들고 오는 남편,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에게 던질 돌을 준비하는 부인, 사회를 향해 돌을 던질 태세를 갖춘 사람, 이러한 사람들만 있다면 가정과 사회는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돌로 치라.’는 율법의 척도보다는 이해와 자비의 척도로 모든 것을 보아야 합니다. 아량과 관용은 온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모든 일이 잘되고 열매가 맺힙니다. 오늘도 이해와 자비와 관용으로 이웃을 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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