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시는 성령님( 2020년 11월 16일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한복음 14:18)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가 삶에 쫓기며 실망하였을 때 사랑하는 부모 형제나 다정한 친구의 한마디 위로가 그 상처에 기름을 붓는 것 같아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받는 위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위로가 미치지 못하는 구렁텅이에 빠지거나 큰 절망에 처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만이 우리 마음속에 위로의 능력으로 임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실 때 제자들이 고아와 같이 될 것을 염려하시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 위로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보혜사’는 다른 말로 하면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위로자가 되셔서 죄에 짓눌린 자, 질병에 눌린 자, 마귀의 공격을 받아 절망과 슬픔의 노예가 된 자들에게 축복과 구원의 은혜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은 제자들의 마음속에 위로와 평강과 담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날 이후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히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고독이나 슬픔이나 절망에 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위로를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돌무더기 속에 파묻혀 죽으면서도 그렇게 위대한 믿음과 담대함을 가지고 원수들에게 복을 빌어 줄 수 있었던 것도 성령의 위로하심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잡혀 매를 맞고 발이 착고에 채인 채 감옥에 갇혀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성령님의 위로가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장 3절부터 5절까지에서 위로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들은 시시때때로 상처받은 마음을 움켜쥐고 주님 앞에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며 나아가 이웃을 위로하도록 힘과 소망과 기쁨을 주시는 이는 오직 또 다른 보혜사 우리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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